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덥잖은 영화를 동시상영하는 <프라자극장>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이 곳은 만화가게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탈출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20년 전의 케케묵은 얘기가 되었지만.

소위 삼류영화관은 새로 생겨나고 있던 문화공간이었다. 100석이 좀 넘을까 하는 작은 상영실과 스크린을 갖추고, 개봉이 지난 시시한 영화를 두세편씩 틀어주는 작은 극장이었다. 때로는 멋있는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멋있는 영화도 이곳에서라면 웬지 시시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삼류영화관은 입장시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아, 갈곳 없고 생각많은 청소년들에게는 훌륭한 피신처였다.

<영웅본색>류의 느와르, <오복성>등 성룡 홍금보 주연의 액션코미디, <천녀유혼>이나 강시물 등 호러코미디 퓨전 등 청소년들에게 영화의 꿈과 비전을 불어넣어주던 홍콩영화들이 단골 상영작이었다. 국내외 에로영화가 동시상영되곤 했으니, 문화불모사회의 청소년으로서는 가슴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분증 검사가 없다는 것 외에도 일반 영화관과 다른 몇가지 특징을 지녔다. 일반 영화관은 영화가 시작하는 시간에만 상영관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언제든 상영관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한번 표를 끊고 들어가 두세번씩 영화를 보는 것도 오케이. 단, 영화 두 편을 번갈아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이므로 한 영화를 두번 보려면 시간이 만만치않게 투여되었다.

또, 상영관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일단 표를 끊고 들어가면 TV를 시청하며 노닥거릴 수 있는 휴게실이 큼직해 영화에 관심없는 방문객도 심심치않게 머물 수 있었다. 휴게실에는 늘 담배연기 자욱했고 바닥은 끈적거렸지만, 그런 것조차 신파이고 신선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갖춘 가정이 많지 않았고, 설혹 기계가 있더라도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은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영화관, 또는 TV 주말의 영화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나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 <프라자극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본 영화를 꼽아보자면, <브루스 브라더스(1980) > <땡볕(1984) ><프레데터(1987)> <오복성(1983) > 등 다양하다.

비디오방이나 DVD방에서 본 영화는 잘 떠올리지 못하지만, <프라자극장>에서 본 영상은 묘하게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프라자극장>은 종종 내게 그리운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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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독일 본까지 찾아갔으나, 폐관 시간을 잘 못 알아 베토벤의 생가 마당만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다. 아쉬운 맘에 그곳에서 악보를 몇 권 구입했는데, 이후 베토벤의 피아노곡을 매일같이 연주하게 되었다. 요즘 연습중인 베토벤의 <열정 Apaddionata> 소나타는, 20년 전에 치던 손 감각이 꽤 살아나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한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문득 천재를 이토록 흔들어놓은 열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너무도 궁금해진다. 그는 여러번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18살 연하의 테레제라는 여성에게 청혼했던 사실이 유명한데, <열정>소나타는 테레제와 관계가 있는 곡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 곡이 테레제의 후견인인 브룬스빅 백작에게 바쳐졌기 때문이다. 조화롭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격정적이고 암울한 멜로디가 교차하는 <열정>소나타에 대해 "테레제와, 테레제의 누이에게 동시에 사랑을 느꼈던 베토벤의 심적 갈등을 묘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초보자들도 즐겨 연주하는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유명한 소곡도 원래는 <테레제를 위하여>였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베토벤이 워낙 악필이서, 훗날 기보하는 과정에서 테레제가 엘리제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어쨋거나, 그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음율들은 테레제라는 여인과 연결되어 있다. 테레제가 청혼을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베토벤은 결혼한 적이 없다. 청각 장애 때문인지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인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도 한다. 당사자에게는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이겠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천재에게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권장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기적인 생각도 솟는다.


얼마 전 주성치의 영화를 처음 소개해준 친구를 만나, 최근 개봉한 <쿵푸허슬>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의 소개로 처음 본 주성치 영화 <식신(食神. God of Cookery(1996)>을 다시 떠올렸다. 마침 도사마가 아니 보았다기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몇 년전부터 주성치의 팬이다. 다시 본 영화 <식신>은 팬으로서 불성실했던 나의 호감과 지지를 생생히 되살려주었다.

주성치의 영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 속의 현실과 영화 밖의 현실, 배우의 유머와 관객의 유머를 뒤섞는다. 쿨걸의 대명사인 막문위를 의리로 똘똘 뭉친 추녀로 변신시키거나, 조폭에게 발각되느냐 마느냐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엑스트라의 NG신을 삽입하는 장난 정도 쯤이야. 주성치는 영화 속 주인공 <식신> (그의 영화 속 이름도 '주성치')의 대사처럼 "너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지 알수 없을껄!!!"이라 놀리고 있는 듯하다.

62년생인 주성치가 40줄에 들어서니 무디어진 것 같기는 하다. <소림축구>, <쿵푸허슬> 등의 그의 최근작을 보면, 쫓아갈 수 없을 것만 같던 감각의 폭이 줄어 나같은 범인의 상상력 조준 지대까지 내려온 듯하다. 확실히, 3류 영화 같던 답답한 세트와 조잡한 효과는 세련되어졌지만, 하이퍼 유머의 현실감은 떨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도 더 복잡해졌다. 영화를 찍을 때 마다 여배우와 일으키는 스캔들은 여전하고, 그 때마다 파파라치들과 티격태격. 이쪽저쪽 치받고 다닌 덕에 한때 "주성치 군단"으로 불리웠던 영화인들과의 인간관계도 한결 나빠졌다고 한다. 그의 상상력과 자유로움이 침해받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주성치 영화는 강한 본인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표현물이다. 그러다 보니, 주성치의 팬이자 주성치 영화의 팬으로서의 본분에 다시 충실해진 나는, 밤늦도록 그의 삶을 궁금해하며 이리저리 스토킹 수완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