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산지 벌써 일년 반이 넘었다. 마포서 출입하던 경찰 기자 시절, 신촌에서 자취한 게 일년 못 채웠으니, 독거 경험으로는 최장 시간을 갱신 중이다.

90년대말 자취했을 때에는 1년 동안 가스불을 켜 본 게 두번쯤 될까 말까 하니, "스스로 취사=자취"라 하기도 좀 뭐한, 말그대로 "독거"일 뿐인 나날이었다. 경찰 기자의 하루일이라는 게, 일찍 끝나야 오후 9시, 걸핏하면 밤샘에 야근이었으니, 취사 의지가 있어도 (냄비는 하나 사놓았었다)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 어려웠다. 20년전 신촌은, 요즘 홍대 앞처럼 한밤중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시끌벅적한 젊은이의 거리였다. 자취하던 원룸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밥집, 맥주집, 24시간 포장마차 등이 포진해 있었으므로, 밥짓는 수고를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어스" "케사르"와 같이 음악 빵빵하게 틀어주는 술집들을 전전하며 혼자 술을 마시곤 하던 것도 그 때 즈음이다, 그러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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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 비교하자면, 요즘은 "독거"가 아니라 엄연한 "자취"이다. 혼자 밥도 지어 먹고, 손이 많이 가는 반찬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다. 세탁도 쌓이기 전에 해치우고, 주변 정리도 허투로 하지 않으며, 술도 집에서 혼자 마신다. 부지런해졌다기 보다는, 주변 환경을 최대한 "제대로" 갖추어 놓음으로써, 홀로 사는 피폐함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보자는 노력의 일환이다. "늘 혼자 있기"는 아직 익숙치 않지만, 혼자 버틴 일년 반동안 나름대로의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치 담그기는 나의 "독거" 생활의 비밀 병기이다. 작은 항아리에 꽉 찰 정도의 분량을 만드는 정도이지만, 장보고 배추 절이는 시간까지 더하면, 한 나절이 꼬박 걸리는 노동이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로 특히 시간을 내서 담근다. 고생을 감수하며 김치를 담그고 나면, 나의 일상이, 식탁이, 또한 정신 상태가 "제대로" 라는 점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고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직접 담근 김치가 시판 김치와는 맛이 딴판이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맵지 않고 시원한 이북식 김치는,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돈주고 살 수 없는 맛이다. 바깥에서 먹고 들어올 때도 많아서, 맛있는 시기를 넘겨서까지 먹어야 할 때가 많지만, 내가 만든 이북식 김치가 냉장고에 있으면 괜히 부자가 된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김치 담그기가 비밀 병기라지만, 수많은 독거자 혹은 독신자들은 어떤 비책으로 나홀로의 삶을 견디는지 궁금하다. "나혼자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애청했었는데, 데프콘이 하차한 이후에는 "홀로 살기"보다는 "함께 하기"로 컨셉이 바뀐 듯해 시큰둥하다. 맨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얘기만 나오니, "홀로 살기"를 거부함으로써 "홀로 살기"를 견디라는 얘기인가, 결국 나홀로 삶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인가. 뭐 비밀 병기라는 게 괜히 비밀 병기라 하는 게 아니겠지만은, 암튼 뭐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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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OS 2015/03/04 16: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또다른 혼자사는 자취인이요.
    요니의 이북식 김치... 빵에 올려 먹어도 참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