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팬이랄 것은 없지만 SF영화를 볼 때에는 제멋대로 분석하고 상상하는 편이라, 요것조것 지껄이고 싶은 게 많이 생긴다. 적어두자. 최근 본 < Brazil >을 기념할 겸.

• 80년대 SF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 Brazil (1985, 감독 테리 길리엄) >을 얼마전에 보았다. 80년대 영화답게 스피디한 느낌은 없지만 꼼꼼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그러기엔 그 이후에 나온 SF물을 너무 많이 보았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개봉 당시에 보았으면 어땠을까. • 영화를 보면서 멋대로 계보를 만드는 게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이 영화는 < A clockwork Orange (1971, 스탠리 큐브릭) >와 < Blade Runner (1982, 리들리 스콧) >를 이어 받되 경박한 골계미를 더했으며, 몇몇 미장센은 < Kafka (1991, 스티븐 소더버그) >나 < Delicatessen (1991, 장 피에르 주네 등) >로 이어지는 환타지 계열 SF물에서 재활용된 것 같은 느낌.

• 예컨대 < Brazil >에서 세트의 설정이 맘에 든다. 포드주의를 풍자한 채플린 영화에 나옴직한 "기록국 (Department of Records)"의 풍경이라든지, < Kafka>에도 자주 등장한 덕트를 이용한 편지통 커뮤니케이션. 번잡하고 왁자지껄한 "기록국"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방"으로 구성된 "정보검색국 (Information retrieval chamber)"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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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razil 의 한 장면]

• 테리 길리엄의 최근 영화 중에서는 <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2009) >이 인상적이지만, < Brazil >처럼 직접적이고 소박하게 상상력을 펼쳐 보인 영화가 더 좋다. 그나저나 < Brazil >의 한국어 제목은 도대체 왜 <여인의 음모>인걸까. 이것이야 말로 이 영화에 대한 누군가의 음모가 아닐까.

• 우리나라에서는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괴상망칙한 제목으로 더 유명한 < Bad taste (1987, 피터 잭슨) >는 내가 두눈 뜨고 본 유일한 스플래터 영화인데 (그렇다, 난 블러디한 영화는 두 눈 감고도 못보는 겁쟁이인 것이다), 걸작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잭슨 감독의 가장 유쾌한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 < District 9 (2009, 닐 블론캠프) >를 보고 비슷한 느낌의 통쾌함을 느꼈다. 멋대로 대결 구도를 만들어 보자면,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류의 "심각하다 못해 인류를 다 멸망시키거나 또는 구원해야만 하는" SF내러티브에 대한 반(反)내러티브랄까. 통쾌하다.

• "출중한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는 길에르모 델 토로 감독의 < 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 (판의 미로, 2006) >. 이 영화에 나오는 해괴한 생물체을 만들어낸 상상력은 대단한 수준이다. 그 상상력은 최근 몇 년간 늘어난 괴물과 싸우는 류의 영웅 영화나 시시껍적한 환타지에서 여러 차례 재활용, 삼활용되고 있으니 사실 SF상상력은 돌고 도는 것이란 사실을 여기에서도 확인. 피터 잭슨 감독 대신 메가폰을 잡은 <호빗 (내년 개봉 예정)>에 큰 기대중.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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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 2011/09/20 23: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호빗과 사는 나 ...꼭 호빗봐야겠구만

  2. yonnie 2011/09/22 00: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호빗도 좋아할걸. 호빗 보자고 하면.